2009. 6. 2. 09:27
[프레시안] 해고투쟁 단원들, '다시 무대에 서고싶습니다' 공연
2009. 6. 2. 09:27 in 합창단 지지 자료
프레시안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28172009§ion=07 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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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자로 전원 해고 통지를 받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복직투쟁이 100일을 넘어섰다. 이들은 그간 출근투쟁과 함께 매주 수요일 문광부 앞 집회와 격주로 금요일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으며, 4월에는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희망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예술노동자의 비정규직 확산과 비전 없는 문화정책, 주먹구구식 문화행정 등 수많은 문제를 단번에 드러낸 오페라합창단 사태는 지금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저항하고 있는 오페라합창단원들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이들은 거리나 임시무대가 아닌 장천아트홀의 정식무대에서 두 번째 희망음악회를 열었다. '우리는 다시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을 단 이 날 희망음악회는 국립대극장 노조에 속한 전통음악가들이 연대차 피리3중주를 들려주며 막을 올렸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베이스라는 성악가 함석헌과 소프라노 오미선의 찬조공연도 있었다. 국회도서관 공연 때에는 눈물바다를 이루며 울음을 터뜨렸던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은, 이 날만은 결코 울지 않았다. 오랜만에 정식무대에 서는 만큼, 절대로 울지 않고 끝까지 최고의 공연을 보이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오페라에 조예가 깊지 못한 대중들을 고려해 대체로 잘 알려진 유명한 곡들로 레퍼토리를 채웠다. 간단한 무대 연기가 가미된 곡들은 물론이고 집회마다 불려져 이제는 너무나도 친숙하게 들리는 '우정의 노래'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같은 곡들에 심지어 트로트 메들리도 선곡됐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오페라합창단은 무려 세 곡의 앵콜곡을 부를 정도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지만, 정작 단원들은 원래는 더 잘하는데 그간 목이 너무 상한 데다 연습이 부족해서" 원래 기량보다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인터넷 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최근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 - 2009>를 펴낸 한윤형 씨도 이 날 공연에 관객으로 참석한 뒤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독자들과 함께 이 글을 나누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나는 음악을 모른다. 취미도 없다. 인상 깊게 본 공연이라고는 언젠가 여동생이 채근하여 같이 보러 간 <오페라의 유령> 정도가 전부다. "이건 제목에 '오페라'가 들어갔으니 오페라는 아니겠지?"라며 찾아보니, 뮤지컬이었다. 음악에 대한 내 지식이 이 정도다. 그런 내가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단돈 1만원에.
지난 5월 15일에 열린 국립오페라합창단 후원 음악회 덕분이었다. 7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부린 오페라합창단을 하루아침에 해체해 버린 엽기적인 사태 때문에 그들은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거리에서 부르던 노래를 공연장에서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오페라합창단 문제를 알리고 후원금도 모아보자는 요량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르는 주제에 오페라합창단을 후원하기 위해 공연에 갔다. 한편으론 정부가 주선해준(?) 이 좋은 기회를 빌어 싼 돈으로 고급문화도 즐겨보겠다는 흑심도 있었다.
▲ 사진제공_민주당 최문순 의원 |
공연은 대만족이었다. 첫 곡으로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부를 때부터 나는 자신의 몸을 악기로 단련해온 그들의 목소리에 압도당했다. 수련으로 몸의 일부를 무기로 변형시킨 무협소설의 고수들을 보는 듯 했다.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나 같은 초심자들을 위해 선곡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나 같은 문외한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공자들보다 더 유명한 노래와 그렇지 못한 노래를 구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명한 노래는 들어보았지만 그렇지 못한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공연의 노래들은 반 정도 들어는 본 것들이었다. 매우 반가웠고, 이런 노래들을 그렇게 잘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나는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매우 훌륭한 기량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오랜 거리투쟁으로 인한 연습부족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최선의 공연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나 같은 이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웠다. 합창단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오신 남녀 성악가들의 독창까지 가미되어, 공연의 콘텐츠도 매우 풍부했다. 1만원이라는 돈이 아무래도 너무 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가장 재미있게 들은 노래는, 남성단원들이 부른 "여자보다 귀한 것은 없네"라는 노래였다. 가사 자체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그보다는 단원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재미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나는 오페라합창단원이 노래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연기까지 해야 하는 전문직업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깨달음은 한편으로는 슬픔을 불러왔다. '국립'이라는 이름을 달고 단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부리면서 끊임없이 정규직화를 약속하다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현 정부의 행태만이 슬펐던 것은 아니다. 10년을 넘는 시간을 성악 공부에 투자하고 '국립' 오페라합창단에 들어온 그들은 자아실현을 이룬 롤 모델이 되어야 마땅하다. 단원들 중에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내 또래의 20대 중반의 남녀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자신의 꿈을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그런 위치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지난 7년간 받은 월급은 130여만 원 남짓했다. 전문직업인에 대한 대가로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자주 좌절하지만 한국사회는 시장에서 대우하지 못하는, 대우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한국에 오페라 공연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성악교육을 받는 젊은이들을 묵인하는 것일까? 순간 국가에서 필요에 의해 선수들을 키워놓고 지원없이 로망을 강요하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오버랩되었다.
더구나 정부는 오페라 공연이 한국 사회에 필요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한국에서 오페라 공연이 열릴 때마다 무대에 서야 했다. 공연횟수를 늘리기까지 했단다. 더구나 문화관광부는 오페라 관련 예산을 감축하기는커녕 증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역할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해체해버렸다. 그래놓고는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민간 차원에서 오페라합창단을 신설한다는 것이니 역할이 중복된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갑자기 2007년에 재미있게 본 20대 백수들을 다룬 드라마 <메리 대구 공방전>이 떠올랐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메리가, 실은 자신이 원하는 뮤지컬의 주연 배우가 되어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 처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뮤지컬 주연 배우가 되어도 하루하루 생활을 걱정하면서 뮤지컬 이외의 것들에 대한 걱정을 한 트럭 안고 간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오페라합창단 문제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물론 나는 전문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대우가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청소하는 미화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의 비정규직인 곳이 있는가 하면 청소노동자들의 월급이 그 대학 교수의 월급의 반을 넘는 사회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전문직 노동자들이 저 정도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판타지를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가? 기껏 비정규직 얘기를 하면 "그럼 학교 다닐 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정규직 된 이들은 어찌하란 말인가?"라고 대꾸하는 이들이 많은데. 길거리에서 비정규직 투쟁할 때 아이가 엄마에게 저 사람들 뭐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엄마는 "저렇게 안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해..."라고 말한다는데. 이렇게 체제는 너무나도 순진한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큰 틀에서 보면 예술부문의 비정규직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가까운 원인을 찾으면 노무현 시대에 고용된 이들은 무조건 자르고 싶어 하는 이명박 정부 관료들의 강박증을 거론할 수 있다. 또 하나 큰 문제는 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 문제아들의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저열하다는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문화관광부의 간섭을 보라. 좌파 지식인들이 밥벌이를 하는 게 아니꼬와서 과를 없애고 예산을 줄이고 난리가 났다.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격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 초가삼간이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데에 있다. 어찌할 것인가.
오페라합창단 싸움부터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페라합창단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라는 전선만으로도, 반MB전선만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음악애호가들도 분노할 수 있는 말이 안 되는 문제다. 오페라합창단 해체를 반대하는 이들이 1만 3천명이 넘는 서명자를 모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탓일 게다. 정치적 성향을 초월하여 오페라합창단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그들이 다시 오페라 공연 무대 위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면 비정규직 문제 이슈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반MB전선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싸움 자체에서는 오페라합창단원들의 복직 문제에만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오페라합창단은 원래 오페라 공연에서도 주인공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네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있는 힘껏 박수를 치면서 나는, 이분들은 이렇게 묘한 방식으로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어떤 심경을 지니고 있을지 못내 궁금했다. 그날 그분들은 무대 위에서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무대를 갈망하여 투쟁해야 하는 그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그분들이 다시 복귀하고, 그것도 정규직으로 복귀하고, 자신의 투자와 노력에 대한 대가를 좀 더 많이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입장료가 비싸서 나 같은 이는 더 이상 그들의 노래를 듣지 못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들이 더 밝고 경쾌한 마음으로 공연 마지막 곡이었던 "Oh, Happy day!"를 부르는 날이 오기를, 나는 그것을 바라며 공연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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